|
필리핀에서의 부활절은 아마도 크리스마스 다음으로
의미가 큰 공휴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것은 노는 날수에서도
그렇지만 필리핀 사람들의 가슴속에 쓰며있는 부활절에 대한 열정이라든가,
성금요일날 벌어지는 종교행사가 필리핀 사회의 특징을 표현해 주는
강도에서 볼 때도 더더욱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성금요일
벌어지는 종교행렬(procession)은 필리핀사회를 하나로 묶어주는
사회통합의 기능을 하는 모습들을 사진을 보면서 들여다 보기로
하겠습니다.
제가 필리핀에서 짧지 않는 세월을 살면서 이같은
종교행사에 참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것은 제가
종교를 가진 것도 없고, 어떤 한국분이 말한 것처럼 "저런
걸 할 돈이 있으면 돼지나 한 마리 잡지"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게 탐탁하게 여기질 않았던 것도 한가지 이유라면 이유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런 걸 모르고는 필리핀을 알
수 없다는 나름대로의 절박함때문에 이번에 한번 곁다리로 끼어
본 것입니다.
부활절을 영어론 holy week라고 합니다. 맞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우리말로 번역을 하면 성주일이라고 해야 하나요?
성주일이라고 하니까 돌아가신 코메디안 이주일씨도 생각나고, 다른
한편으론 여자를 밝히는 한 주일이라는 뉘앙스도 풍기기도 하는데
실제론 이 주일은 즐거움이라든가 주색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고
봐야 합니다. 특히 금요일 밤에는 외국인들이 주로 가는 아주 일부
술집외엔 전부 문을 닫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상가들도
철시를 하고요. 그래서 마닐라만에 석양이 지는 것이
두려운 사람들에겐 영 반갑지 않는 때이기도 합니다.
앞에서 이렇게 잔소리가 길어진 것은 저의 목요일
밤의 행동에 대한 나름대로의 이해를 돕게 하기 위해섭니다. 솔직히
고백하면 목요일날 밤은 새벽까지 산미구엘 맥주를 들이키면서 당구를
쳤드랬습니다. 어차피 금요일에는 종일 열반참선을 해야 할테니까요.
어떤 분은 그럴 시간 있으면 사이트 업데이트나 좀하지 하면서 나무랄
분도 있을겁니다. 그러나 마음껏 망가질 수 있는 많지 않는
날중에 하루를 그렇게 무의미(?)하게 보내고 싶진 않았습니다.
금요일 오전 일찍이 열반참선에 대한 희망은
제가 아는 필리핀분의 전화 한통화로 무참히 깨져 버렸습니다. 저녁에
procession에 참가해서 카로사(이 단어가 정확한지 모르겠습니다만
예수의 동상을 태운 마차 비슷한 겁니다)를 밀지 않겠냐는 전화를
받고 얼떨결에 그러마고 대답했습니다. 약속을 했으니 약속은
지켜야죠. 5시 반까지 자기 집으로 오라고 해서 택시 잡기도
힘든 날이라 조금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어떻게 그럴라고
한건 아니지만 정확하게 5시반에 친구집에 도착을 했습니다. 친구
부모님께 그분들의 손을 제 이마에 갖다대는 인사를 하고 간단히
차린 부활절 음식을 들고 6시에 성당으로 향했습니다.
맨위의 사진이 바로 종교행렬을 위해서 성당으로
향하는 카로사의 모습입니다. 이 동네에선 20개가 넘는 카로사들이
있었습니다. 카로사는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밑에 타이어가 부착되어 있어 밀면 되는 것이 있고 (물론 내리막길을
갈 때는 당겨야 되겠죠) 다른 하나는 어깨에 메고 가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미는 것이든 메는 것이든 모든 사람들이 호흡이
조금은 맞아야 합니다. 요즘 시셋말로 코드가 비슷해야 된다는거죠.
어쨋든 성스럽다고 생각하는 분을 옮기는데 정성을 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필리핀의 여느 사회나 그러하듯이 나이는 상관없지만
그러나 여자는 직접 밀거나 메는 행위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촛불을 들거나 그냥 뒤를 따라 갑니다. 그중 어떤
사람들은 맨발로 걸어 가는 사람도 있고요.
카로사의 일반적인 모습을 보면 예수만의 상을
세우거나 거기에 천사와 함께 서있는 상, 예수가 기도하는 상이나
아니면 말을 타고 있는 모습등 카로사에 따라서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같이 국화를 비롯한 꽃과 전등으로
장식이 되어 있습니다. 해가 진후 컴컴할 때 하는 이유는
부활절이 더운 여름(필리핀은 지금이 여름입니다)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불을 밝히면 한층더 멋을 부릴 수 있으니까
그러기도 한 것 같구요. 또 다른 특징은 전등불을 밝히기 위해서
시끄러운 발전기를 돌린다는 것입니다. 원동기 돌아 가는
소리가 얼마나 시끄럽겠습니까. 그러나 필리핀 사람들은 소음을
음악으로 소화시킬 줄 아는 능력을 가진 백성이란거 아마 살아 본
분들은 이해를 하실겁니다.
하여튼 20여개가 넘는 이런 카로사들이 불을
밝히고 동네의 골목골목을 돌아 간다고 생각해보세요. 삶이
피곤할지라도 이런 날은 예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날은 이것만이 볼거리가 아닙니다. 골목골목 가건물을
지어 예수의 수난상을 표현한 calvery가 있습니다. 여기엔
여러 가지의 수난상을 여러 사람들이 직접 드라마틱하게 연기로
표현하곤
하는 곳도 있고요. 아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폭풍우가 몰아치는 강인지
바다인지를 보트를 저어 가는 모습같은 거죠. 행렬에 직접
참여하는 동민들이 아닌 경우엔 집앞에서 촛불을 켜들고 지나가는
행렬을 구경합니다.
그럼 이 카로사들의 주인은 누굴까요. 그들은
동네에서 돈이 좀있고 신앙심이 깊으며 동민들로부터 어느 정도
존경심을 받아야 합니다. 카로사 한 대에 대충 10만페소를
하며, 해마다 예수에게 새로운 의상과 꽃장식을 하고, 그리고 카로사를
메거나 미는 사람들에게 티셔츠 하나씩 나눠줄 재력은 되어야 되겠죠.
그리고 행사 마지막에 간단하게 요기를 시켜 줘야 되는 것은
말 할 필요도 없고요.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동민들에게
인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겁니다. 만의 하나라도 인심을
못 얻는 경우엔 아무도 그집 카로사를 멜려고 하지 않을테니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일년내내 다른 사람들에게 잘해야 된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이런 것이 필리핀 사회를
그나마 밝고 살 만하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분석을 해봤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이런 것이 필리핀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가 아닐까 하는 느낌을 받은 것은 저 혼자만의 생각일까요?
procession - 이 단어는 물론 행렬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사전을 찾아 보니까 "출발 후 순위가 조금도 변하지 않는 경주"라는
뒷줄에 적힌 뜻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니까 경쟁이 없다는
애깁니다. 그 날 우연히 제가 신앙심이 없는 것을 예수가 눈치챘는지
모르지만 제가 미는 카로사의 발전기가 고장을 일으켰습니다. 그걸
고칠려고 멈춘 동안은 뒤의 어느 카로사도 추월을 하지 못했습니다.
세월아 하고 기다리더군요. 근데 뒤의 카로사만 그런 것이
아니고 앞에 가던 카로사도 기다리더군요. 그걸 보고 왜 사전에
그런 의미가 생겼는지 확실히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러나 제가 신앙심이 없다고 해서 현재 엄청난
양심의 가책같은 걸 느끼고 있을거라고 생각하면 그건 망상에 불과
합니다. 사실 다른 필리핀 사람들도 신앙에 대한 생각은 별로
없는 것 같더라구요. 제가 아는 여자분한테 지금 뭘 생각하고 있냐니까
돌아 온 대답이 "생각하기엔 뭘 생각해"였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필리핀에서 이런 행사는 종교행사라기 보다는 차라리 삶자체라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해봤습니다.
|
유료회원[골드] 회비결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