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대사관의 피눈물 나는 노력으로 관광비자연장을 6개월까지 가능케 했다는 소식에 '사람은 자고로 오래 살고 볼일'이로다 하고 생각했다. 시절이 시절이니만큼 세상도 변하지 않을 수가 없을게야, 하면서 새로운 희망을 갖고 살아 보기로 작심한지 며칠 되지 않아 그 희망은 실망과 갑갑증으로 변해 버렸다.
       으례히 대사관이라는 높은 자리에서 내려온 말이라 힘없는 백성들이야 어찌 믿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거금 3000페소를 가벼운 마음으로 투자했고 당연희 6개월까지는 연장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지례짐작으로 미리 확인도 하지 않고 연장됐다는 여권을 들고 돌아 서면서 필리핀이 하는 일이라 행여 잘못이 있지 않나 싶어 뒤적인 여권의 해당 페이지는 나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사실 내게는 연장해줘도 그만 안해도줘도 그만이지만, 일못한다고 뭇매 맞은 한국대사관의 노력으로 이만큼이나 이루어진 것이라 그 결과에 대한 기대가 자못 컷던 것은 사실. 그러나 빈 상자를 연 것과 같은 기분에 차라리 가만히나 있지 뭣이 자랑할 게 없어서 맞지도 않는 사실을 신문에까지 시끌벅적하게 떠벌렸을까 하는 생각에 아직도 입맛만 쓰다.
        우리 대사관의 공로를 필리핀 이민국직원에게 자랑하다 면박 당한 저의 얼굴을 한번 상상해보십시요. 그렇잖아도 못생긴 얼굴인데. 한국대사관에 가서 비자연장하라는 필리핀 이민국직원의 대답이 맞나요?
       하기사 비자연장의 필요성도 못 느끼는 높으신 분들이야 그저 소주의 안주감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 내용이지만 해가 져도 별 볼일 없는 무시래기 서민들에게는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한번 속삭여 보고 싶소. 이제사 새로이 안 것은 어떻게 중국의 한 동포가 저승행 티켓도 없이 공짜로 하늘나라로 같는지 알 것 같구료. 어쨌던 높으신 대사님 수고 많이 많이 하셨습니다. 다가오는 크리마스에 많은 축복 받으시고 새해에는 나라야 어찌 됐던 가내에는 좋은 일만 생기기를 빌어 드리겠습니다.                                          (2001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