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로 영어를 배울러 갈려면 일로일로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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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영어"하면 가장 먼저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단어가 따글리쉬다. 영어발음에 필리핀의 현지 언어인 따갈로그어의 발음이 섞인 것을 의미한다. 이 따글리쉬라는 말을 들으면 '시원찮은 영어'를 의미하는 걸로 우리들에게 보편적으로 받아 들여지는데, 따갈로그라는 말은 실제 필리핀에서의 어떤 한 지역을 의미하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서울을 포함하는 경기중부지역에서 사용하는 말을 표준말로 정했듯이, 필리핀도 수도 마닐라 주변지역, 즉 따갈로그지방에서 사용하는 말을 표준말로 정했다.

필리핀에서는 100개가 넘는 언어가 존재한다고 하는데 그중의 한 언어가 따갈로그어다. 필리핀에서 처음 표준말을 정할 때 어디 말을 표준으로 할 것인가에 대한 말이 없잖아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사용인구에 있어서 따갈로그어에 필적하는 말은 시부지역을 중심으로 사용하는 시부아노라고 한다. 이말은 시부뿐만 아니라 민다나오섬의 다바오시까지 걸치는 광대한 지역에서 사용되는 말이다. 사용인구적인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표준어로서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한 것은 언어의 부드러움이다. 언어의 미적인 측면을 고려해서 필리핀의 표준어는 시부아노로 정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시부말은 억양이 부드럽다는 것을 단번에 느낄 수가 있다. 반면 따갈로그어는 정말 골 때린다는 느낌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굿이 따갈로그 지방이 아니더라도, 마닐라 북부지역의 빰빵가 지역과 코리 아키노의 고향인 딸락지방도 그렇다. 언어는 비슷한 구석이 있긴 있지만 완전한 따갈로그어가 아니다. 빰빵가는 빰빵안이라는 또 다른 말을 쓴다. 이 나라 대통령인 글로리아 마까빠갈 아로요 여사의 영어를 들어 보라. 이 아줌마는 미국의 전 대통령인 클린턴과 동창이다. 클린턴은 얼마나 영어를 잘하는가? 한 교실에서 배웠는데 어찌 그렇게 다를까를 생각하면 바로 자기의 고향말인 빰빵안의 영향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내가 여기서 하고자 하는 것은 시부아노를 자랑하고자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필리핀사람의 영어에는 자기가 쓰는 현지언어의 액센트나 억양이 쓰며든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다. 실제로 필리핀에 살면서 영어의 억양이 부드러운 사람은 의외로 마닐라에서 먼 지방출신 사람들이 많다. 반면 마닐라 주변의 따갈로그출신 사람들의 영어 억양은 듣기 민망스러울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면 필리핀에서 가장 영어를 매끄럽게, 골 때리지 않게 하는 지역은 어딜까? 그곳은 아마도 일로일로지역 사람들일 것이다. 이말을 했다고 일로일로지역 사람들이 내한테 밥한끼 사 주겠는가마는, 이 결론은 진실에 가깝다고 보여진다. 예를 들자면 전 상원이었으며, 전임 에랍 대통령편에 섰다가 지난 총선에서 낙선한 디펜소르 산티아고 여사의 경우를 들을 수 있다. 평소에 어떻게 저 여자는 저렇게 또박 또박 영어를 하는가를 생각하고 있는데, 지난번 총선에서 역시 상원의원에 출마했다가 그 역시 낙선한 전임 필리핀 증권거래소의 장이었던 Yasay씨의 영어는 정말 매끄럽다. 생긴 것도 그렇지만 어디 영국에서 왔는가 싶을 정도로 억양이나 액센트가 듣기에 전혀 부담이 없었는데 그도 바로 이 일로일로 지역 출신이라고 한다. 대부분분의 필리핀의 배운 사람들은 그런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바로 일로일로출신이라는 것을 알아 차릴 정도다.

그러면 왜 일로일로 지역 사람들은 그런 영어를 구사할까? 바로 해답은 거기서는 평소 집에서도 가족끼리 영어를 대화의 도구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자기지역에서 사용하는 언어에 대한 집착이 그렇게 심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다른 지역을 가보라. 자기네들끼리 말할 때 영어를 쓰는가.

요즘 자고 일어나면 어느 시골에 어떤 어학원이 생겼다는 광고가 나오는데, 왜 그런 시골에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되는가를 생각하면 왠지 서글퍼진다. 딸락이네 라구나네 하면서 가는데, 그 시골 사람들이 얼마나 영어를 잘할까. 영어의 표현력이 시원찮으면 발음이나 액센트라도 좋든가. 그 어느것도 아니라면 그것도 모르고 시골로 시골로 모여드는 죄없는 우리 어린학생들만 불쌍하다. 어떤 기분 나빠하는 독자가 '영어 잘하는 영어선생님이 가르치는데 무슨 소리냐'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그래도 어차피 시골로 갈바엔 일로일로로 가라고 권하고 싶다. 말을 어디 선생님한테만 배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