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사람의 눈에 비친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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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가끔 인터넷상의 "경험담"이라는 이름아래 적혀 있는 이상한 말을 접할 때가 많이 있다. "필리핀인들은 한국인을 아주 좋아한다"는 의미의 말을 각자 글쓴이의 느낌을 곁들여 가면서 아주 그러싸하게 풀어 놓고 있는 것들이다. 어쨌던 똑같은 말을 받아 들이는 입장에서 좋게 해석해서 듣는다는 것을 나무랄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굳이 좋아졌던 기분에 재뿌리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으니까.
        그러나 어떤 사회의 현상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고 받아 들이는 자의 주관적인 느낌이 과대하게 이입된다는 것이 꼭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본다. 더구나 그런 느낌으로 쓴 글을 제3자가 읽고 그것을 읽은 독자들이 앞으로 어떤 결정을 내리는데 있어서 참고로 해야할 때는 더더욱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본인도 몇몇 예를 들어서 해석한다손 치더라도 그 예가 통계상 의미를 가질만큼의 많은 경우도 아니고, 또 한사람의 개인으로서의 주관적인 감정을 완전히 배제했다고는 자신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필리핀인들의 눈이 우리 한국인들을 앞으로도 계속 주시하고 관찰할 것이며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들에 대한 평가도 계속된다는 진형형적인 속성 때문에 과거와 현재를 되집어 보고 내일 보게될 우리들의 초상들을 좀더 반 듯하게 만들어 보자는 데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마음에서 이글을 쓴다.

과거속의 한국인
        그러면 과연 필리핀인들의 눈에 우리들은 어떻게 투영되어 왔을까? 역사적으로 보면 한국인에 대한 기록은 그렇게 많지 않다. 지리적인 문제를 언급할 때나 한국이라는 이름이 등장할까, 그렇지 않고 사람이나 문화를 말할 때는 거의 눈에 뜨이지 않는다.   이것은 한국이라는 나라가 필리핀들에게는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고 지끔까지는 그저 먼 나라 애기로만 취급되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문서나 서적이 아니고 일반인들, 특히 2차세계대전당시의 상황을 기억할 수 있는 세대들에게는 우리 한국인에 대한 인상이 강하게 남아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대전당시의 격전지였던 마닐라만의 입구에 붙어 있는 바탄지방같은 곳은 한국인에 대한 아주 나쁜 인상을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곳으로 손꼽을 수 있다. 필리핀 현지인들을 무자비하게 살육한 장본인이 바로 한국인이었다고 그들은 말한다.
        이런 나쁜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이 지역에는 한국의 수출자유지역과 같은 성격의 공단이 하나 있다. 한때 이 공단에서 외국기업을 유치할 때 주민들이 한국기업의 입주를 강력히 반대했다는 애기가 있다. 이같은 사건은 한국인에 대한 주민들의 감정상태를 단적으로 말해 주는 것으로서, 그 당시 대사를 비롯하여 많은 한국인들이 선물을 사들고 가서 사과를 하고서야 겨우 그런 분위기를 가라 앉혔다는 애기가 있고 보면 우리 한국인들에 대한 필리핀인들의 인상이 좋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90년대초 유학생을 필두로 어학연수생들이 필리핀으로 몰려 들기 시작할 때 70년대는 일본인들을 상대로 하숙을 치다가 한국인을 상대로 하숙집을 운영하던 필리핀 아줌마가 있었다. 이 아주머니가 한국사람을 하숙생으로 받아 들인다고 하자 이웃들이 모두가 "그 무서운 한국사람하고 같이 살아도 괞찮으냐?"라는 염려섞인 말을 했다는 것만 봐도 우리 한국인들에 대한 필리핀 구세대들의 느낌이 어떠했는가를 쉽게 짐작할 수가 있다.
         본인이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한 할머니는 자기 아버지가 바로 한국인에 의해 살해됐다고 한다. 당시의 살해장면을 스스로의 눈으로 똑바로 봤다는 이 할머니의 애기는 우리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하고도 남는다. "한국인들이 땅을 파고 그 구덩이에 자기 아버지를 머리만 내놓고 파묻은 뒤에 일본도로 목을 쳤다"고 말했다. 그런 식으로 한국인들이 일반 양민을 수도 없이 죽였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답답한 마음에 어떻게 한국인인지 일본인인지 아느냐는 항의성 질문에 그 할머니는 그들은 모두가 한국말을 썼다는 대답에 다시 질문할 의욕을 깡그리 날려 버렸지만.
         혹자는 주장할 것이다. 그것은 일본애들이 훗날 자기들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꾸민 일일 수도 있고, 그리고 먼 과거의 일이 현재 필리핀에 살고 있는 우리 한국인들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목에 핏대를 세울 수도 있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과거를 정확하게 인식했을 때만 현재를 현명하게 살 수가 있고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과거의 사실에 대해서 무지한 상태로 남아 있다. 실제로 필리핀인들이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는데도 그 원인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나 기록이 전무한 상태다. 한마디로 역사의식의 부재라고나 할까. 그러면서 일본교과서 가지고 떠드는 요즘의 우리를 보면 뭔가 나사빠진 행동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의 지나친 걱정이길 바랄 뿐이다.

현재속의 한국인
        지나온 과거속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것 없이 살아 온 우리 한국인들이 필리핀 땅에 오늘처럼 많은 사람들이 뿌리를 내리게 된 계기는 아마도 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유학생들이 유입이 커다란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치과대학을 비롯한 의과대학, 약학대학과 같이 한국에서는 입학하기가 무척 어려운 학과를 필두로 수많은 유학생들이 필리핀으로 진출하게 됐다. 게다가 영어를 사용한다는 잇점 때문에 여타학과도 차츰 인지도를 더해 가면서 두터운 교민층을 형성하게 되었다. 교민층이 두터워지고 교민들을 상대로 하는 비즈니스가 붐을 이루면서 교민사회의 확대는 가속도를 붙였다.
        그러다 교민사회의 확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아마도 90년대 중반부터 불어 닥친 세계화가 아닐까. 세계화에 있어서 결정적인 요소는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라는 데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영어를 따라 잡기 위해서 대학생을 필두로 수많은 사람들이 필리핀으로 필리핀으로의 물결을 형성했다. 필리핀에서의 어학연수는 따글리쉬를 쓴다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저렴한 수강료의 매력 때문에 다른 영어 사용국보다는 훨씬 매력적인 어학연수국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렇게 급작스럽게 형성된 교민사회가 현지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단기간의 체류일정으로 터를 잡은 교민들은 나중에 떠나면 그만이라는 안이한 생각으로, 때론 필리핀 현지인으로부터 받은 불이익에 대한 복수의 일념으로 해서는 안될 많은 일들을 해왔다. 초기에 가장 빈번하게 일어 났던 일들이 전화요금을 떼먹고 도망가는 것들이었다. 그런 예는 어디서든 쉽게 목격되는 것이었다. 마카티의 어느 콘도에서는 한국인이 전화요금 50만페소를 연체시켜 놓고 야반도주했다는 전설아닌 전설도 있고 보면 그런 류의 사례가 상당했을 것이라고 쉽게 짐작이 간다. 당시의 환율로 대충 계산해도 한국돈으로 족히 1500만원은 되는 돈이다. 국민소득수준이 한국의 10분지 1수준인 필리핀 사람에게 그돈은 얼마나 크게 느껴질지는 아마 쉽게 짐작이 될 것이다.
        초창기의 백지상태에서부터 차츰 더러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서 지금은 엄청 망가졌다는 결론을 내려도 이 결론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그리 많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그런대로 괞찮게 굴러 오던 한국인에 대한 인상이 점점 나빠지게 된 것은 한국인들의 너도 나도식의 필리핀유입이 한몫 했을 것이다.
        마르코스정권 시절의 백사장 이야기만 빼면 사실 뚜렷한 사건은 없었던 셈이다. 필리핀 사람에게서 흔히 들을 수 있었던 애기로는 남광토건이나 한일건설(현재의 한진건설) 직원들에 대한 애기들이다. 건설관련업계의 직원들에 대한 험담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들이 우리들에게 조금 나쁘게 다가오는 것이 있다면 식모들을 따먹고 애를 낳으면 그들을 잘 돌보지 못했다는 것 정도.   앞에서 언급한 백사장 애기는 필리핀에서 불법 벌목이 사회이슈가 되면서 필리핀의 언론에 등장한 한국인의 불법 벌목 관련사실이 일반인들의 기억에 자리잡은 것들이다. 필리핀인들은 중국인과 한국인들이 필리핀의 산림을 다 망가뜨렸다고 말한다. 실제로 백사장이라는 사람은 마르코스시절 불법 벌목으로 엄청난 부를 축척했다가 마르코스 해외망명과 함께 그 자신도 해외로 도주했다는 소문이 전해 오는 사람이다. 그는 한창 좋은 시절에는 술집에 가면 그 술집 셔터문을 내렸다는 애기가 전해 오는 인물이다.

말에 신뢰성이 별로 없는 한국인
         한국인들의 말에는 별로 신뢰를 하지 못한다는 진실은 한국인들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해본 경험이 있는 필리핀인이면 누구나 입밖으로 내 뱉는 말이다. 특히 무슨 예약이나 사적인 약속도 쉽게 지키지 않는 경향이 많다. 나의 개인적인 경험만으로도 이런 결론은 쉽게 내릴 수가 있다. 얼마전 잘 알고 있는 중국인이 통역을 부탁해 왔다. 다음 날 오후 3시까지 좀 와달라고. 그러나 다음 날 3시가 지나고 5시가 넘어도 나타나야 할 한국인이 끝내 나타나 주지 않았다. 내가 지은 죄가 아닌데도 괞히 미안해서 혼난 적이 있다.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한국인간의 범죄 이야기들
         한국인들끼리의 범죄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이런 것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한국인들의 얼굴에 먹칠하는 경우가 많이 생겼다. 사채업자 정모씨의 경우와 최근에 케손시에서 일어난 한국인에 의한 한국인 유괴납치사건 같은 경우는 필리핀인들의 한국인들에 대한 인상을 무척 나쁘게 해왔다고 보여진다. 금전 요구를 위한 유괴납치가 생활화 되어 있는 필리핀에서 한국인간에 일어난 그런 범죄는 그들의 머리속에 어떤 영상을 남길까는 쉽게 상상이 된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요즘 한국인에 대한 사건이 터지면 으례히 한국인간의 문제로 넘겨 짚는 경향이 많다. 스스로가 뿌린 씨를 이제사 거두는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2001년에는 위의 한국인에 의한 한국인 유괴납치뿐만 아니라, 기억에 남을 만한 또 다른 사건은 한국인에 의한 택시강도사건일 것이다. 한국인간의 범죄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필리핀인들을 상대로 한 범죄의 시초라고 해도 될 이 사건은 마카티에서 일어난 한국인 택시승객에 의한 택시강도 미수사건인데, 술취한 한국인 승객이 권총을 쏘면서 운전사에게 돈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앞뒤가 좀 맞지 않는 부분이 있긴 있지만 어쨌던 신문에 그렇게 보도가 되었고, 그러한 보도는 필리핀인들에게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를 많이 손상시켰다고 봐도 무리가 없지 않을까.